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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강화역사박물관 - [인천 강화] 강화역사박물관 - 박물관 속의 박물관

by current-events-online 2025.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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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강화도에 다녔지만 강화도에 있는 박물관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역을 방문했을 때 그 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을 꼭 찾아보기로 한다. 우선 박물관을 둘러싸고 현지를 찾는다는 것을 알수록 현장을 방문했을 때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도중에 면한 깨끗한 하늘과 수확을 마친 들판이 잘 어울린다.

 

강화역사박물관 관람시간:09: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 1, 구정, 추석 관람료 : 3,000원(자연사박물관 포함) 주차 요금: 무료

강화역사박물관과 강화자연사박물관의 통합 발권을 하고 있다.

 

사인 비그 제작 동종 - 강화 동종 (사인비오카 제작 강화산성 남문에 걸려 있던 종으로 1688년(숙종 14)에 처음 만들었지만 소리가 좋지 않아 1711년(숙종 37)종을 녹여 재료를 더해 재작성했다.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한 사인비그가 만든 8가지 종 중 하나다. 두 마리의 용이 종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지 안내판)

 

높이 198cm, 구경 138cm. 고려궁지에서 본 종의 진짜다. , 관청에서 사용되는 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단에 9개의 연꽃을 둔 연곽이 4개 있다. 지금 전시실에 들어간다. 강화의 불술-청련사 감로왕 탄 기획 전시 중이다. 강화고산 정상에 5개의 연꽃이 피는 오리엔지가 있었지만, 416년(고려장수왕4) 여기서 연꽃을 날려버린 곳에 백련 절, 청련사, 아카렌지, 황련사, 흑련사를 세웠다고 한다.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강화 고려산에 있는 청련사도 찾아야 한다. 청련사 원통 이와누마지탄(인천형 문화유산) 검로탄은 망인의 천도를 위해 우란분의 내용을 그림화한 그림이다. 서 있고 왼쪽에는 아미타 산존 불이 오른쪽에는 지장 보살과 인로 왕 보살이 그려져 있습니다. 성반 밑에는 두 마리의 굶주린 악마가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에 지옥과 현세의 다양한 생활상을 그렸다. 전체적으로 색이 둔하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166.5cm, 세로 146cm이다. (문화유산청) 검로탄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문화유산청의 설명 내용에 굳이 '다이쇼 5년'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있을까?

 

불화는 의식용, 교화용, 장엄용으로 나눌 수 있지만 감도는 죽은 자를 위한 천도의식을 보낼 때 사용되는 대표적인 의식용 불화라고 한다. 감로섬에는 악마로 표현되는 분개하고 죽어 의지하지 않는 무주고혼들에게 천상의 신들이 마시는 <감로>를 맛보고 극악왕생을 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악마 3도에 빠져 먹을 수 없는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님께 방법을 물어 백일중에 과거와 현재의 부모를 위해서 전 세계의 부처와 스님에게 음식을 공양한다는 내용을 그림 로 표시한다. 감로도는 화면을 3단으로 나누어 상단의 천상계, 중단 시식예, 하단의 지옥과 속계로 나뉜다. 무심코 보았지만 설명과 함께 자세히 보면 그 의미가 보인다.

 

악마(鬼)는 몸이 안고 건조해 배가 수미산보다 큰데 반해 목구멍은 바늘 구멍처럼 작아서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아기는 성질이 나쁘고 심하게 탐욕스러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끄는 말이지만, 아규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한 사람의 양보도 없이 싸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아수라장과는 싸움 등으로 시끄럽고, 매우 혼란한 곳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 나중에 제이시카와와 싸우면서 악신이 되었다고 한다. 온다고 한다.

많이 쓰는 말인데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상설 전시장. 우선 구석기에서 청동기까지 유적과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강화도에만 유네스코에 등록된 도르멘군이 5곳 있다.

 

강화도 마니산의 진성단은 천군이 제사장을 보낸 제단이라고 전해 오는데 단군이 진정한 성매니선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등산도 점점 부담이 된다. 몽골의 침입을 받은 고려는 1232년(고려고종 19) 6월 강화도에서 천도를 결정한다. 몽골군은 수전에 약하고 수동 개경에 가까워 조간만의 차이가 큰 갯벌 때문에 방어에 유리하며 개경을 향한 조운로에 위치해 전국의 조운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선정된 1234년 궁전을 포함한 국가 기본시설이 완성된다. 강화도는 강도나 황도로 불리며 몽골을 피해 도망친 임시수도가 아니라 항쟁하고 고려를 지키기 위한 공식 수도로 인식한다. 궁정, 종교행사 등은 격이 내려가지 않고, 개경에 있던 호왕지, 호제지, 왕륜사는 개경과 강도에 똑같이 세워, 혈구사와 가장 친구가 무신정권의 주도 아래에 세운 사원의 선원사를 창건한다. 강도도 천도에서 개경의 많은 인구가 강화로 이주해 특종감, 양현고 등의 기록도 등장한다. 강화도에는 4기 고려왕릉과 상급관료의 무덤이 확인된다. 1270년 무신정권이 붕괴되어 개경에 환상한다. 이것은 몽골에 대한 복속을 의미했다. 조선도 국가가 위기할 때 피난소로 강화를 선택한다. 해도에 들어오는 조운선이 통과해야 하는 해상관문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

 

병자 호란 이후 강화 해안선 강화에 따라 진, 빔, 돈대를 설치하기 시작하여 5진 7보 54 금대가 설치됐다. 서문을 내고 강화 유수의 민진원이 첨화루라는 현판을 걸었다.

 

사고와 외규장각 사고는 고려와 조선 실록을 비롯한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는 곳으로 강화사고는 1606년 마니산에 있었고 1660년 정족산으로 옮겼다. 1782년 정조는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설치했지만, 1866년 병사양양 때 강화에 상륙한 프랑스군에 의해 타오르고 왕실의 상자 등이 약탈된다.

 

한국과 서유럽의 충돌 장 - 강화 1866년 프랑스가 충돌한 병인양모와 1871년 미국과 충돌한 신미양모 이후 흥선대원군은 옹화비를 세우고 더욱 강력한 쇄국정책을 단행하지만 명지유신에 성공 하여 현대국가로 전환한 일본은 운양호 사건을 일으켜 1876년 조일수호 조규 - 강화도조약을 체결한다.

 

실감 영상관에는 3개의 영상을 상영하지만 조선 25대 왕철종을 모시기 위해 오는 행렬을 기록한 '강화행렬도'를 재현했다.

 

강화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려시대, 천도였던 고려궁지에 관심이 있었지만 자료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야외 전시장에는 여러 종류의 석물이 전시되어 있지만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오면 강화 자연사 박물관도 좋겠지만, 우리는 강화의 역사를 파악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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